• 실시간 속보창 보기
  • 검색 전체 종목 검색

주요뉴스

[참 기업인, 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구자경, 시대 앞서간 글로벌 경영자
파이낸셜뉴스 | 2019-12-15 15:29:05
[파이낸셜뉴스]“혁신은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이며, 내 평생의 숙원이다."
1995년 1월 그룹 회장 이임식 당시 구자경 회장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LG의 경영화두로 '혁신'을 강조하고 떠났다. 비단 LG뿐 아니라 한국경제사에서 구자경 회장은 시대를 앞서간 '혁신의 전도사'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정립한 LG의 경영이념인 '고객가치 중심'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선진화에 필수적인 표상이 됐다.

■재계 혁신 전도사 '구자경'
15일 LG에 따르면 구자경 명예회장은 1970년대에 잇따른 기업공개(IPO)로 우리나라 초기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민간 기업의 투명경영을 선도했다.

1970년 2월 그룹의 모태였던 락희화학(현 LG화학)이 민간 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가 기업공개를 하면서 주력 기업을 모두 공개한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됐다. 이후 금성통신(1974년), 반도상사·금성전기(1976년), 금성계전(1978년), 럭키콘티넨탈카본(1979년) 등 10년간 10개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단행해 안정적인 자금 조달을 통한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LG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기업공개를 기업을 팔아 넘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일부 임원들은 강력히 반대했다"며 "구 명예회장은 기업공개가 앞으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것이며,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꺾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구 명예회장은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던 기업인이다. 25년 재임기간 동안 50여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 헌츠빌에는 한국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인 컬러TV 공장을 세웠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기업이 이제는 미국 사회에서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합작경영의 대명사
구 명예회장은 1960년대부터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에도 과감히 나섰다. 대표적으로 1966년 호남정유와 미국 칼텍스와의 합작을 꼽을 수 있다. 50대50의 경영권을 양분했지만 상생과 조화라는 합작의 기본을 존중하면서 50년 넘는 동맹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GS 계열분리 이후에는 GS칼텍스로 명맥을 잇고 있다.

1974년에는 외국과의 합작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금성통신이 기업공개에 나설 당시 파트너였던 지멘스의 원활한 협조로 재계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LG 관계자는 "지멘스와의 합작은 선진기술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됐다"며 "많을 때는 10여명의 지멘스 기술자가 금성통신에 파견돼 1년 이상 머물며 금형기술을 전수해줬고, 가전부문에서도 라디오나 냉장고의 부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구 명예회장은 "럭키그룹은 두 가지 면에서 합작의 명분을 찾아 왔다"며 "하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것이 가능했던 건 그룹의 모태인 ‘인화(人和)'라는 독특한 기업풍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 명예회장은 개방과 변혁이 소용돌이 치는 1980년대를 겪으면서 글로벌 무한경쟁을 예견했다. 1988년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을 발표했다. LG 관계자는 "당시 구상은 사업전략에서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전면적인 경영혁신을 담은 것"이라며 "특히,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 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절대절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구 명예회장이 당시 도입한 ‘고객경영’은 1990년대 초반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전략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격동기, 경제단체 위상 재정립
구 명예회장은 격동기였던 1980년대 재계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앞장섰다. 1987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한 그는 “전경련이 시대적 상황에 맞춰 새로운 발전이 요청되는 이때, 분에 넘치는 중책이긴 하나 징검다리가 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경련 회장으로 재임한 1987~1989년 노사분규 등 사회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경련 산하에 ‘경제사회개발원’을 설립하고, ‘국민 속의 기업인, 국민경제를 위한 기업’을 모토로 기업 이미지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과 기업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 게 구 명예회장 시절"이라고 기억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시각 주요뉴스
  • 한줄 의견이 없습니다.

한마디 쓰기현재 0 / 최대 1000byte (한글 500자, 영문 1000자)

등록

※ 광고, 음란성 게시물등 운영원칙에 위배되는 의견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