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 2025-09-18 16:01:02
[비즈니스워치] 정혜인 기자 hij@bizwatch.co.kr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그룹 동맹이 마침내 공식 출범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세계그룹 G마켓과 알리바바그룹 알리익스프레스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다. 양사는 합작법인을 통해 국내 셀러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쿠팡과 네이버(NAVER)가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데이터 분리' 조건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집단 신세계와 알리바바 그룹이 합작회사(JV)를 설립해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공동으로 지배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신세계그룹이 지난 1월 24일 기업결합을 신고한 지 8개월여 만에 나온 결정이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승인에 조건을 달았다. 우선 합작회사 그랜드오푸스홀딩의 산하로 편입되는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를 상호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또 두 플랫폼간 국내 소비자 데이터를 기술적으로 분리하도록 했다. 특히 공정위는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시장에서 상호간 소비자 데이터 이용 금지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보안 노력 수준 유지 등의 시정명령도 내렸다.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가 해외직구 소비자의 데이터를 서로 활용할 수 없도록 한 명령이다. 단, 해외직구 외에서는 각 플랫폼 소비자들이 상대 플랫폼에서 자신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선택 가능하다. 이 시정명령은 3년간 유효하다. 공정위는 3년간 주기적으로 시정명령 이행상황을 점검한 후 3년 후 시정명령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내린 것은 두 회사의 합병이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시장에서 알리익스프레스는 점유율 37.1%로 1위, G마켓은 3.9%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결합 후 양사의 합산 점유율 41%로 1위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아폴로코리아는 3조400억원 가치의 G마켓 주식 100%를 현물출자해 알리익스프레스 인터내셔널로부터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 주식 50%를 취득하게 된다. 현물출자와 주식 교환이 완료되면 그랜드오푸스홀딩은 알리익스프레스와 G마켓을 자회사로 두게 된다. 그랜드오푸스홀딩의 지분은 아폴로코리아와 알리익스프레스 인터내셔널이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한다.
이번 기업결합 승인에 앞서 신세계그룹은 아폴로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했던 에메랄드SPV를 이마트에 흡수합병 시켜 지배구조를 단순화 했다. 또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3월 외국인투자기업에서 한국 법인으로 전환하는 등 사전 작업을 마쳤다.
인터파크·이베이 거쳐 신세계·알리까지
G마켓은 국내 1세대 이커머스 기업 중 하나다. 국내 오픈마켓 시장을 주도하며 한때 이커머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후발주자들에게 밀리며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G마켓의 뿌리는 2000년 4월 인터파크 사내벤처로 설립된 '구스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물의를 일으킨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당시 인터파크에서 일하며 구스닥을 창업했다. 구스닥은 2003년 웹사이트 브랜드를 현재의 G마켓으로 바꾸며 오픈마켓 형태로 전환했다. 당시 1위 업체였던 옥션을 추월하며 2005년 오픈마켓 1위에 올랐다. 2006년에는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에도 성공했다.
경쟁 플랫폼 옥션을 운영하던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 이베이는 G마켓과 경쟁을 지속하는 대신 아예 인수하기로 했다. 이베이는 2009년부터 순차적으로 G마켓 지분 100%를 사들였다. 여기에 투입된 금액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2011년 탄생한 기업이 이베이코리아다. 국내 1,2위 오픈마켓 두 곳을 모두 운영하게 된 이베이코리아는 독보적인 이커머스 1위 지위를 누렸다. 대부분의 이커머스 기업들이 흑자조차 내지 못하는 것과 달리 2005년부터 15년 연속 흑자 경영에도 성공했다.

신세계그룹에 인수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안정적인 수익성과 시장 지위 덕분이었다. 신세계그룹은 2021년 11월 이마트를 통해 3조5000억원을 들여 G마켓(당시 이베이코리아)을 인수했다. 이는 신세계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인수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 신세계그룹은 M&A로 단숨에 이커머스 시장 3위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의 기대와 달리 G마켓의 실적은 급격히 악화됐다. 이커머스 시장 중심축이 쿠팡 등 직매입업체로 이동했고 오픈마켓 시장은 네이버가 사실상 장악하면서 G마켓은 설 자리를 잃었다. 2022년부터 G마켓은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연간 매출액마저 1조원 선이 무너졌다. 신세계그룹이 기대했던 SSG닷컴과의 시너지 효과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관련업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결국 신세계그룹이 꺼내든 카드는 알리바바 그룹과의 '동맹'이었다. 알리바바 그룹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 내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해외로 가는 K셀러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 그룹은 합작법인 조직 구성과 이사회 개최, 사업 계획 수립 등을 위한 실무 작업에 돌입했다. 합작법인 출범에 따라 G마켓은 플랫폼에 등록된 60만 셀러가 올해 안에 해외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G마켓 셀러들이 해외에 판매할 상품은 약 2000만 개로 대다수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이다. 첫 진출 지역은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5개국이다. 이후 알리바바가 진출한 200여 개 국가로 판매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G마켓 셀러들은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상품 코너에도 입점한다. 이를 통해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 내 상품 라인업을 크게 늘릴 수 있다. G마켓은 알리바바의 AI 기술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상품 추천 및 상담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 그룹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맞춰 고객의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해 실행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 그룹의 합작법인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알리익스프레스의 강점인 저가 상품이 G마켓 플랫폼을 통해 국내에 대량으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동맹이 가격 경쟁에서는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현실적인 시장 점유율을 고려하면 업계 전체를 뒤흔들 만한 지각변동까지는 이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 해외직구 시장 합산 점유율 40%가 넘는 1위다. 반면 국내 이커머스 전체 시장 내 점유율은 높지 않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G마켓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10% 내외로 추산된다. 지난해 기준 알리익스프레스의 점유율은 0.3%에 불과하다.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 그룹은 "한국 셀러들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 지원해 우수한 ‘한국 상품’의 해외 판매를 늘리겠다"며 "양사 협업을 통해 고객에게는 상품 선택의 폭을 크게 늘려주고 첨단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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