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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따뜻한 법에 녹아가는 책임
프라임경제 | 2025-10-17 17:58:27
[프라임경제] 정부가 신용사면으로 연체자의 기록을 지워주자, 국회는 이제 채무자에게 '연락 차단권'을 주려 한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의 이야기다.

개정안 자체는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하는 개인이 많아진 상황에서, 금융회사와 정보력·교섭력 차이 때문에 고강도 추심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개정안이 모든 과정을 거쳐 시행된다면, 고액채권의 기준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돼 법의 보호 밖에 있던 많은 이들이 들어오게 된다.

또 금융회사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자에게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배경을 고려하면 법안의 '출발선'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금융 질서라는 큰 틀 안에서 어떤 파급을 낳을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호의 선의가 책임의식의 퇴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17일부터 시행된 현행법은 채무자의 추심 연락을 주당 7회로 제한한다. 일상 생활까지 제한할 수 있는 과도한 추심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 개정안은 한 발 더 나아가 '개인금융채무자가 서면으로 채무 상환 거절 의사를 밝히거나 추심 연락의 중지 의사를 밝히면, 추심자는 추심을 위한 연락을 중단해야한다'고 명시돼 있다.

빚을 진 사람이 "갚을 생각이 없다"고 하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연락조차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법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는 지점이다.

결국 채권자가 돈을 돌려받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소송뿐이다.

금융회사는 회수 비용이 늘고 대출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진다. 그 부담은 성실하게 빚을 갚는 다수의 금리 인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정치권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선의로 움직인다. 하지만 빚을 갚지 못한 사람만이 약자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때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 그들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금융기관, 사회를 굴리는 경제 전체가 책임 위에 세워진 신용으로 작동한다.

선의가 한쪽으로 기울면, 또 다른 쪽의 약자는 침묵 속에서 생긴다. 균형 없는 보호는 결국 또 다른 불공정을 만든다.

선의의 제도가 지속되려면, 그 안에는 반드시 책임을 위한 냉정함이 함께 있어야 한다.

장민태 기자 jmt@newsprime.co.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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