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 2026-07-25 10:00:02
[비즈니스워치] 장종원 기자 jjw@bizwatch.co.kr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는데도 신약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HLB의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세 번의 최종보완요구서(CRL)를 받은 이유 역시 약효가 아닌 제조·품질관리(CMC) 문제였습니다.
FDA가 최근 공개한 CRL 사례를 보면 허가 지연 사례의 상당수가 제조·품질관리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임상만 성공하면 신약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입니다.
신약 허가에서는 임상시험 결과뿐 아니라 동일한 품질의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CMC(Chemistry, Manufacturing and Controls)가 신약 허가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단순 효능 검증 넘어선 '일관성' 과학
CMC는 화학(Chemistry), 제조(Manufacturing), 품질(Controls)의 약자로, 의약품의 원료부터 제조 공정, 시험 방법, 품질 기준, 안정성, 제조 시설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리 체계입니다. FDA는 허가 심사 과정에서 해당 의약품이 정해진 성분과 함량, 순도와 품질을 유지하는지, 생산할 때마다 동일한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허가 심사는 단순히 '이 약이 효과가 있는가'만 보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 약을 상업화한 뒤에도 언제나 같은 품질로 생산할 수 있는가'를 함께 검증하는 절차입니다.
바이오의약품은 생산공정이 복잡합니다. 세포주 관리부터 단백질 특성, 무균공정, 공정 변경 전후의 동등성까지 입증해야 합니다. 공장 시설이 GMP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넘어 임상시험에 사용한 제품과 실제 판매 제품의 품질이 일관된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허가 지연 74%가 제조·품질 문제
FDA는 지난해 2020~2024년 발행된 CRL 202건을 공개했습니다. 제약 생산 전문매체 파마 매뉴팩처링이 이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74%인 150건에서 제조공정과 제조시설 실사, CMC 등 품질·제조 관련 문제가 확인됐습니다. 하나의 CRL에 여러 보완 사유가 함께 담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신약 허가 지연에서 제조·품질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의미입니다.
HLB의 사례는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2024년 5월, 2025년 3월, 2026년 7월 세 차례에 걸쳐 발급된 CRL의 핵심 사유는 캄렐리주맙 제조사인 중국 항서제약의 CMC 문제와 시설 실사 지적사항이었습니다. 세부적인 이유는 달랐지만, 임상 데이터가 아닌 제조 시설이 발목을 잡았다는 뼈아픈 공통점이 있습니다.
CMC, 기업 운명도 바꾼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역사에는 CMC 문제로 기업의 운명이 뒤바뀐 굵직한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희귀질환 치료제 기업 젠자임과 인도 제네릭 업체 란박시 사례입니다.
젠자임은 2009년 생산공장에서 바이러스 오염 문제가 발생하면서 생산이 중단됐고, FDA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았습니다. 세계 환자들에게 공급 차질이 빚어졌고, 회사는 수년간 경영난을 겪은 끝에 2011년 사노피에 인수됐습니다.
란박시 역시 2008년부터 제조·품질관리(GMP)와 데이터 무결성 문제가 잇따라 적발됐고, 2013년 미국 법무부에 5억달러 규모의 벌금을 납부했습니다. FDA는 주요 생산공장에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 사건은 제조공정 관리와 데이터 무결성이 신약 개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전 세계 제약업계에 각인시켰습니다.
CMC, 개발 초기부터 대비해야
CMC 문제는 허가 신청 직전에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임상용 제품과 상업용 제품의 생산공정이나 제조시설이 달라지면 제품의 동등성을 다시 입증해야 하고, 제조소 실사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재심사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외부 위탁생산(CDMO)을 이용하더라도 최종 책임은 허가 신청 기업에 있습니다. 원료, 완제, 포장, 시험시설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전체 허가 일정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신약 개발의 진정한 성패는 약효를 입증하는 임상시험과, 이를 동일한 품질로 양산할 수 있는 제조 역량이 결합할 때 비로소 판가름 납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신약 기획 단계부터 CMC 구축에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쏟아붓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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