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 2025-10-16 18:28:02
[비즈니스워치] 김미리내 기자 pannil@bizwatch.co.kr
KTX의 노후화와 기대수명 만료 임박으로 교체 논의가 나오는 가운데, 신규 차량 교체 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제작검사(제작감독·감리)'에 대한 독점 문제가 불거져 주목된다.
현재 국내 단 두 곳뿐인 전문 제작검사업체 간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독점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경쟁 문제를 비롯해 향후 신규 고속철도차량에 대한 품질과 안전 문제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40년 독점 끝났나 했는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최근 2004년 운행을 시작한 KTX-1 차량 노후화에 따른 고속차량 교체 논의에 돌입했다. 기대수명인 30년(2033년)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차량제작, 시운전, 차량인수 등을 감안하면 2027년부터 교체작업 착수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예상사업비만 약 5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차량 대체를 위해서는 신규 차량 제작뿐 아니라 철도안전법에 따라 제작과정에 대한 검사(감독)가 이뤄져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철도안전법상 발주처인 코레일이 전문 제작검사업체(위탁업체)에 이를 위탁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승인해 준 설계와 공정대로 민간제작사가 차량을 제대로 제작했는지 확인하고 검사하는 역할이다.
전문 제작검사업체는 코레일, 서울교통공사 등 철도차량운영사나 제작사 등에서 26년 이상 근무경력과 관련 학위를 겸비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춰 현재 국토부가 '철도차량제작검사기관'으로 지정한 곳은 단 두곳이다. (사)한국철도차량엔지니어링(이하 로테코)과 케이알이앤씨주식회사(이하 KR E&C)다.
하지만 두 회사는 경력 차이가 크다. 로테코는 1963년 코레일 출신 기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출발했다. 1970년 일본검사 주식회사와 철도차량 검정 관련 업무제휴를 통해 국제검정기관으로 지명되고, 1971년 철도청 화차 등에 대한 검정용역 수주를 시작했다.
반면 KR E&C는 전문인력 수와 직원수는 로테코와 비슷하지만 2010년 설립한 신생회사다. 약 40년간 이뤄진 로테코의 독점 문제 지적이 일면서 공정경쟁 필요성에 의해 태동했다. 인력은 코레일을 비롯해 서울·부산·대구교통공사, 현대로템 출신 등으로 구성됐다.
KR E&C는 설립 후 곧바로 국토부로부터 '철도차량제작검사기관 제2호'로 지정된다. 같은 해 7호선 연장 관련한 차량 제작검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내면서 철도차량 제작검사 시장의 경쟁체제가 본격화 했다. 현재는 15년 경력으로 브라질, 이집트,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철도차량 제작감독 및 검사 등으로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문제는 KTX 등 고속철도차량(EMU)에 대해서는 여전히 로테코의 독점구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개통 시에는 제작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고속철도차량의 신규제작검사가 처음 발주된 때는 2017년이다. 이때 첫 제작검사는 로테코가 따냈다.
이후 2023년과 2024년, 그리고 올해 두 건을 포함해 총 다섯건의 제작검사를 모두 로테코가 수주했다. 마지막 다섯번째 수주는 KR E&C가 입찰을 포기하면서 수의계약으로 따낸 사업이다. 사실상 경쟁의 의미가 사라진 셈이다.
KR E&C 관계자는 "사업수행능력평가 항목 중 '수행실적'으로 인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이에 따른 점수차로 실적을 쌓을 수 없어 영원히 들러리로 남는 꼴"이라며 "사실상 불공정한 독점이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적 중심 평가로 낙찰기회 조차 박탈"
KR E&C 측은 미래 먹거리이자 규모가 큰 고속철도차량 시장에 나서지 못할 경우 결국 경쟁체제가 사라져 고속철도차량 제작 및 완성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용우 KR E&C 사장은 "기대수명 만기 도래로 향후 고속철도차량에 대한 대대적인 교체가 이뤄지고 이후 차량들도 고속화할 것이니만큼 고속철도차량은 가장 중요한 미래 먹거리"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체제가 무너진 후 대규모 물량이 쏟아지면 한 곳에서 제작 및 완성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한정된 전문 인력에서 업무중첩이나 피로 누적으로 차량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품질문제'나 대규모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쟁점은 사업수행능력평가 평가 항목 중 '수행실적'이다. 1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한 수행실적 배점은 총 10점이다. 총 70점 가운데 14.3%의 비중이다. 사업실적이 없을 경우 기본점수로 6점(60%)이 주어진다. '4점'의 차이가 벌어지는 셈이다.
KR E&C 관계자는 "0.5점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상황에서 4점차는 결코 메울 수 없는 부분"이라며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실적을 쌓느냐"고 토로했다.
KR E&C는 이같은 문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2월 철도차량운영사인 코레일과 SR에 '철도차량 제작감독 용역입찰 평가기준' 개선을 권고했다.
공정위는 "현행 고속철도차량 제작감독 용역입찰에서 수행실적을 고속철도차량 용역실적을 기준으로 평가해 기존실적이 있는 업체(사실상 1개)가 유리하고 신규기업을 제한한다"면서 "수행실적 평가 점수 간격을 축소해 실적이 부족한 업체도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따라 개선된 게 현재의 배점 기준이다. 코레일은 수행실적 배점을 낮추고 기술능력 배점을 높였다. 기존에는 수행실적 평가 배점이 '15점(21.4% 비중)'이었다. 권고대로 점수 간격을 축소했지만 점수 차이는 '6점차'에서 '4점차'로 좁혀졌을 뿐이다.
KR E&C 관계자는 "제작감독은 검증된 전문 인력이 매뉴얼을 토대로 진행하는 만큼 기존 수행실적이 업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수행실적 항목 조정이 어렵다면 일반철도 등의 기준과 동일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도차량은 고속철도, 일반철도, 도시철도와 특수차로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현재 일반철도, 도시철도, 특수차는 모두 차종 구분 없이 실적평가 기준을 합해서 적용하고 있다. 고속철도만 별도로 사업수행 실적을 요구하는 만큼 기준을 통일해 수행실적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KR E&C 관계자는 "일단 공정경쟁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예 문이 닫혀있다"면서 "공정경쟁문제뿐 아니라 대규모 국민들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으로서 품질과 안전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만큼 하루빨리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코레일 관계자는 "2012년 감사원 지적을 반영해 고속차량 분야에는 강화된 자격요건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련됐던 것"이라며 "2024년 말에는 공정위 권고에 따라 평가기준을 개선(수행실적 점수를 하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기술용역 적격심사 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 보완을 위한 외부 전문기관 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용역 결과를 검토해 방침을 수립하고 (평가 기준 등에) 이를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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