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 2026-03-24 18:49:07
[비즈니스워치] 이경남 기자 lkn@bizwatch.co.kr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다시 한 번 승기를 잡았다. 주주총회를 통해 재편된 이사회에서 과반 이상의 이사 자리를 사수하며 이사회 장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다.
하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이사회 선임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으로 MBK-영풍 연합 측이 법원에 새로 선임된 이사진들에 대한 직무정지를 요청할 가능성을 남겼다. 게다가 내년 주총에서는 절반 이상의 이사 임기가 만료되면서 불확실성을 지고 가게 됐다.
24일 고려아연은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제52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애초 이날 주주총회는 오전 9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경영권 분쟁과 맞물려 의결권 위임장 확인 절차가 지연되면서 오후 12시가 지나서야 시작됐고 오후 5시께야 종료됐다.

최윤범, 찝찝한 승리
이날 고려아연 주주총회의 핵심은 선임 이사수 대결이었다. 최윤범 회장 측은 5명을 선임, 추후 상법 개정안 도입으로 인한 분리선출 대상 감사위원 선임을 위한 '공석'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MBK-영풍 측은 정관 상 가능한 6명 선임을 내세웠다. 이사회 내 우호 인사 확보를 위한 '숫자'싸움에 나섰던 거다.
일단 주총에서는 5명을 선임하는 안건이 통과되면서 최윤범 회장 측이 웃었다. 뒤이어 새로운 이사회 인사 선출에서도 최윤범 회장이 사내이사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고 황덕남 사외이사도 연임했다. 미국 제련소 투자를 위해 설립한 미국 합작법인 크루서블 측이 제안한 월터 필드 맥라렌(Walter Field McLallen) 기타비상무이사까지 고려아연 측에서 계획했던 인사들이 모두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다.
MBK-영풍 측은 42%에 달하는 지분율에도 이사회 내 인원 수를 종전 4인에서 5인으로 1명만 확대하는데 그치며 이사회 장악에 실패했다. MBK-영풍 측 인사로는 최연석 기타비상무이사, 이선숙 사외이사가 합류했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불발되면서 이사회 정원이 14명으로 줄어든 가운데 9명이 최윤범 회장 측 인사, 5명이 MBK-영풍 측 인사로 정리됐다.
MBK-영풍 측이 지분율을 사수하기 위해 제안했던 정관변경 안건도 대부분 부결됐다. MBK-영풍 측은 신주발행 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과 발행주식 액면분할 및 액면분할을 위한 정관 변경 등을 제안했다.
고려아연이 승기를 잡긴 했지만 변수도 남겼다. 신규 이사 선임 안건을 집중투표제로 표결하는 과정에서 해외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해석 기준을 두고 고려아연과 MBK-영풍 측이 충돌했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할 이사 수에 따라 의결권이 배수로 부여되는데 일부 해외 기관투자자는 특정 후보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행사되지 않은 표가 발생하면 이를 그대로 인정하느냐, 비례적으로 재배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고려아연 측은 현재 예탁결제원의 시스템 상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을 집중투표에 온전히 적용하기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해 과소표결된 의결권을 비례적으로 재배분 하겠다고 했고, MBK-영풍 측은 집중투표제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MBK-영풍 측 대리인은 "지난해에는 미행사된 의결권을 별도로 재배분 하지 않고 실제 행사된 표만을 기준으로 삼았고 이같은 방식 유지하겠다고 합의했는데 제대로 된 통보 없이 표결 방식을 바꿨다"라며 "이는 적은 표 차이로도 당락이 좌우되는 집중투표제 본질에 어긋나는 만큼 법적 조치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MBK-영풍 측은 지난해 고려아연의 임시 주총 당시 선임된 7명의 사외이사에 대해 선임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었다고 주장,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퇴하지 않은 4명의 고려아연 사외이사는 법원 확정 판결까지 직무정지 중이다. 이들의 임기가 내년 만료되는데 사실상 임기만료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거라는 게 업계 및 법조계 시각이다.
법원이 MBK-영풍의 이날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최윤범 회장의 사내이사 직과 황덕남 사외이사의 직무가 정지돼 이사회 구성이 7인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과반이기는 하지만 절대 인원수 축소로 인한 이사회 장악력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셈이다.
'내년' 주총까지 갈등 지속 예고
내년이 더 문제다.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현 이사회 14명 중 9명의 임기가 줄줄이 만료된다. 아울러 현재 법정 공방으로 인해 직무가 정지된 이사들의 임기도 같이 만료되면서 내년 정기 주총에서 교체 대상은 13명에 달한다. 고려아연 정관상 이사회 정원 수가 19명인 점을 고려하면 이사진 절반이 바뀌는 격변의 시기가 될 거라는 거다.
고려아연이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회 인사들을 선출하더라도 MBK-영풍 측이 쥐고 있는 지분율이 더 높기 때문에 MBK-영풍 측에 우호적인 후보들의 이사회 진입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사회 장악 비중이 10명 대 9명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어 10명을 차지하는 쪽이 경영권을 가져가게 될 것으로 분석한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MBK와 영풍 간 연합의 구속력이 올해 10월 옅어질 가능성이다. 지난 2024년 9월 MBK가 영풍의 '백기사'를 자처하며 고려아연의 지분 공개매수에 나섰을 당시, MBK-영풍은 MBK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대상 지분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257만주(지분율 12%)가량이다.
이 콜옵션은 이사회 과반을 MBK-영풍 측이 확보하거나 2024년 10월 14일 주식공개매수 완료 이후 2년이 되는 날 행사가 가능하다. 이번 주총에서 MBK-영풍 연합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올해 10월이 되면 자동으로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MBK가 최종 보유하는 고려아연 지분율이 영풍보다 적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실질적인 제약은 없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MBK가 사모펀드인 만큼 외부 출자자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분쟁 시작 이후 희소광물에 대한 글로벌 수요 증가 및 코스피 상승 등으로 인해 고려아연의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콜옵션을 행사한다면 MBK의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을 처분하면 충분한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처분하지 않고 연합의 방향을 영풍이 아닌 최윤범 회장 측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영풍 입장에서는 고려아연의 대주주 지위를 잃는 동시에 경영권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와 관련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는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MBK를 더 이상 적이 아닌 새로운 협력자로 받아들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라며 MBK에는 대화 가능성이 있음을 열어두기도 했다. 당시 MBK 측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답하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MBK가 사모펀드란 점을 고려할 때 기존 입장을 견지할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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