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9년 전세법과 착한 규제의 덫
파이낸셜뉴스 | 2025-10-19 19:17:04
파이낸셜뉴스 | 2025-10-19 19: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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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서 건설부동산부 |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9년 전세법'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 임차인 거주안정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이지만, 현장에서는 "전세제도의 뿌리를 흔드는 법"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규제 여파로 얼어붙은 전세시장에 또 다른 제도 변화가 예고되자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임대차 계약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임차인이 두 차례까지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3년+3년+3년, 최대 9년간 거주가 가능하다. 임대료 인상률은 갱신 시 5% 이내로 제한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 측은 "임차인의 평균 거주기간이 3년대 초반에 불과해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장의 체력이 이미 바닥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의 잇단 규제로 전세 매물은 빠르게 줄고 있다. 이달 들어 서울 전세 물건은 1년 전보다 20% 가까이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 기간까지 9년으로 묶으면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시민은 "요즘 다들 전세보다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려 한다. 장기 계약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시민은 "집주인들 말려 죽이자는 거냐"며 "전셋값 상승은 물론 웃돈 거래까지 나올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15 대책의 여파도 본격화하고 있다. 규제지역 확대와 대출규제 강화로 실수요층의 선택지는 한층 좁아졌다. 거래가 막힌 상태에서 임대차 규제 논의까지 겹치자 시장에서는 "이제 남은 건 월세뿐"이라는 냉소가 번지고 있다.
전세 제도는 회전율이 생명이다. 매물이 돌아야 거래가 유지된다. 그러나 9년 전세법은 이 순환을 인위적으로 끊는다. 임대인은 장기간 묶이는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고, 임차인은 새로 진입하기 힘든 구조가 된다. 결국 신규 세입자는 더 비싼 전세나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임대차 3법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0년 도입된 임대차 3법 이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가격이 폭등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착한 의도의 법이 시장 현실과 엇박자를 낼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서민 부담으로 돌아왔다.
정부가 진정 임차인을 보호하려면 규제보다 유인을 고민해야 한다. 전세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세제 지원, 보증보험 인센티브, 공공임대 리모델링 등 현실적 대안을 병행해야 한다. 좋은 취지만으로는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9년 전세법이 의도만큼의 효과를 내려면 시장이 숨 쉴 수 있는 선택지를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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